[위드인뉴스 우현주]
명품 가곡에 명품 목소리는 감동
공연장을 둘러보았을 때, 지금껏 다녀본 공연 중에 관객들의 나이대가 굉장히 다양했던 것 같다. 무대와 가까운 앞열에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고, 공연자들 중 대다수가 교수로 재직 중인 분이 많아 뒷열 쪽에는 잔뜩 설렌 표정을 한 대학생들의 얼굴이 많이 보였다.
한국가곡을 지나간 문화의 산물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국가곡은 세일음악문화재단을 필두로 지금도 새로운 곡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세일음악문화재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한국 가곡 콩쿠르를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가곡 콩쿠르도 개별적으로 만들 정도로 한국가곡을 널리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세일 한국가곡 콩쿠르에서 작곡되어 널리 알려진 곡으로는 <참 맑은 물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돌아가는 꽃>, 등이 있다.
대학교에서 성악을 부전공하며 알게 된 한국 가곡의 첫 인상은 ‘아름답다’였다. 요즈음 학생들이 즐겨 듣는 가요같은데 쓰이는 화성은 묘하게 클래식 음악을 닮은 것이 오묘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시에 우리의 노래를 붙인 노래
한국가곡은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 아닌 시적인 표현들로 가득한 가사를 지니고 있다. 시에 노래를 붙였기 때문도 있지만, 한국가곡의 가사는 꼭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절처럼 느껴지곤 한다.
공연은 음악평론가이자 문학박사인 손수연 사회자의 멘트로 시작되었고, 첫 곡의 제목은 <승무>였다. 메조 소프라노 방신제는 민속적인 선율을 가진 <승무> 또한 훌륭하게 노래했지만, 그 다음 곡인 <꿈길>에 더욱 어울리는 목소리를 지닌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짙은 호소력과 유려한 감정선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꿈길>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또렷하게 보이는 곡이었다.
비단결같은 목소리로 듣는 신진 한국가곡
꿈결처럼 몽환적이고 반짝이는 선율에, ‘물구슬’이라는 가사가 등장할 때는 반주자가 이를 묘사하듯 투명하고 깨끗한 음색으로 곡에 색채감을 더했다. 메조 소프라노 방신제는 그리움에 젖은 듯, 그러나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 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까지’ 라는 독백을 읊조렸고, 이 후 점차 상향하는 감정선에 응답하듯 간주는 참았던 감정이 터지듯 연주되었다. 눈물이 나올만큼 감동적인 <꿈길>이었다.
다음은 테너 김우경의 <언덕>,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연주되었다. 테너 김우경은 그 음색이 비단결인 것으로 유명하다. 언제 들어도 이 값 비싸고 고급스러운 소리는 지루함 하나 찾아볼 수 없다. 테너 김우경은 <언덕>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시를 낭독하듯, 그의 <언덕>은 어딘가 외롭지만 때론 사랑처럼 뜨겁고 파란 바다처럼 슬펐다.
현대곡처럼 재밌고 난해한 한국가곡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현대적인 스타일로 작곡되었는데, <빛>도 그러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약 3번정도 곡의 분위기가 바뀌는데, 테너 김우경은 곡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때로는 왈츠처럼, 때로는 진지하게 노래했다. 이 곡에는 ‘소주’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겹자음없이 표현된 ‘ㅅ’과 ‘ㅗ’가 만난 소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소리가 고급스럽고, 발음의 깊이가 매우 깊었다.
소프라노 홍주영이 불렀던 <빛>은 한국가곡이라기엔 굉장히 특이했다. 가사와 상호작용하는 반주스타일이기는 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뮤지컬곡같기도 하고 난해한 부분이 몇 있었다. ‘우리가 태어난 빛’이라는 가사처럼, 전주는 하나의 코드를 스포르찬도로 쨍하게 드러냈다.
‘더 밝게’라는 가사에서 음악은 동일하게 그 성격이 점차 밝아지고 날카로워지다가 ‘빛은 어디에?’라는 가사와 맞물리며, ‘물음’에 그 표현이 집중되어 나타났다. 뮤지컬, <마리퀴리>의 넘버 ‘두드려’에서 나오는 음형과 음계가 유사해, 물음을 끝으로 가곡은 끝을 맺지만 마치 다음 장면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온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한국가곡
한국 가곡 중에 유난히 가사와 곡에 쓰이는 화음이 어딘가 안온하고, 멜로디 선율이 잘 뽑혔다는생각이 든다면, 그 가곡은 작곡가 김효근의 곡일 확률이 높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에서 소프라노 홍주영은 이 곡의 포근한 끝맺음과 참 잘 어울리는 목소리 같았다.
문장이 끝나지 않았을 때, 혹은 문장에서 그 다음 문장으로 흘러갈 때에는 모든 솔리스트들이 액션과 감정에 유의하며 노래했는데, 이런 하나하나 섬세한 디테일이 노래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만드는 비결임을 알게되었다.
정겨운 우리가락이 쓰인 한국가곡
<잠>과 <요즘 세상>은 지난 11월 1일 예술의전당에서 올린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리골레토역을 맡았던 바리톤 강형규가 노래했다. <잠>에서는 관객석에서 기침소리가 유독 많이 들려 아쉬웠으나, 바리톤 강형규는 우리나라 전통 가락이 쓰인 <요즘 세상>에서 바리톤만의 힘과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팔자’에서의 ‘ㅍ’ 소리, ‘아리아리’에서 쓴 강렬한 악센트의 표현은 듣는 와중에 카타르시스가 온 몸으로 느껴졌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제 17회 세일 한국가곡 콩쿠르 작곡부문에서 2위를 거머쥔 아주 최근 작품인 <요즘 세상>을 이렇게 뛰어나게 해석하다니. 너무 놀라웠다.
2부 스테이지에서는 세일 한국가곡 콩쿠르에서 우승한 젊은 음악가들의 노래와 기존 가곡들로 구성되었고 공연이 끝날 즈음에 공연자들과 관객들은 함께 <남촌>을 불렀다. 아름다운 한국 가곡이 후세대에도 널리널리 알려져, 그 가치가 잊히거나 바래지 않고 항상 빛나기를 바란다.
공연일시 및 장소
2025-11-04(화), 19:3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주최
(재)세일음악문화재단
출연진
메조소프라노, 방신제
테너, 김우경
소프라노, 홍주영
바리톤, 강형규
바리톤, 이대훈
소프라노, 조윤지
프로그램
승무(조지훈 시 / 진규영 곡)
꿈길(김소월 시 / 김주원 곡)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시 / 이인식 곡)
언덕(장석남 시 / 조혜영 곡)
빛(최우정 시 / 최우정 곡)
가장 아름다운 인생(김효근 시 / 김효근 곡)
잠(C.M.Meijering 시 / 이건용 곡)
요즘세상(최동완 시 / 정제호 곡)
신고산타령 (함경도민요 / 장일남 편곡)
꽃 구름 속에 (박두진 시 / 이흥렬 곡)
강건너 봄이오듯 (송길자 시 / 임긍수 곡)
고향의 노래 (김재호 시 / 이수인 곡)
목련화 (조영식 시 / 김동진 곡 / 최영민 편곡)
가고파 (이은상 시 / 김동진 곡)
못잊어 (김소월 시 / 하대응 곡)
남촌 (김동환 시 / 김규환 곡)- 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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